고려 시대의 위기 탈출기: 거란, 여진, 몽골의 침입과 끈질긴 항쟁

안녕하세요. 왕건의 포용 리더십으로 평화롭게 후삼국을 통일했던 고려의 이야기, 지난 시간에 잘 보셨나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려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가장 답답하게 느껴지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일 것입니다. 특히 고려 시대는 중국 대륙의 주인이 수시로 바뀌는 대혼란기였습니다. 한반도 북쪽에서 유목 민족들(거란, 여진, 몽골)이 번갈아 가며 힘을 키웠고, 그들은 호시탐탐 고려를 노렸습니다. 저 역시 학창 시절 '도대체 고려는 왜 이렇게 동네북처럼 맞고 살았을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세계 최강의 제국들이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무려 500년 가까이 나라를 지켜낸 고려인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오늘은 거란, 여진, 몽골이라는 세 번의 거대한 위기를 고려가 어떻게 탈출했는지, 그 생존의 기술을 살펴보겠습니다.

1. 말 한마디로 영토를 넓히다: 거란의 침입과 서희의 외교전

10세기 후반, 만주 지역에서 힘을 키운 거란(요나라)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습니다. 당시 고려 조정은 공포에 질려 "땅을 떼어주고 항복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때 나선 인물이 바로 서희입니다.

서희는 전쟁터에서 칼을 휘두르는 대신, 적장 소손녕과 마주 앉아 '담판(외교 교섭)'을 벌였습니다. 서희는 거란이 고려를 쳐들어온 진짜 이유가 '고려를 완전히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중국(송나라)을 쳐들어갈 때 고려가 뒤통수를 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임을 정확히 간파했습니다.

서희는 "우리도 거란과 교류하고 싶은데, 중간에 여진족이 길을 막고 있어서 못 가는 것이다. 그 땅을 우리가 차지하게 해주면 거란과 친하게 지내겠다"라고 설득합니다. 적장의 속마음을 꿰뚫은 이 완벽한 논리에 거란은 오히려 고려에 '강동 6주'라는 새로운 영토를 내어주고 물러갑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영토를 넓힌, 우리 역사상 최고의 외교 승리로 꼽히는 명장면입니다. (물론 이후 거란이 다시 쳐들어왔을 때는 강감찬 장군이 귀주대첩으로 시원하게 물리쳤습니다.)

2. 적의 장점을 흡수해 맞서다: 여진의 위협과 윤관의 별무반

시간이 흘러 12세기가 되자, 이번에는 흩어져 살던 여진족이 하나로 뭉쳐 고려의 국경을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고려군은 여진족을 얕보고 공격했다가 크게 패배하고 맙니다. 고려는 주로 걸어 다니는 보병 중심이었는데, 여진족은 말 위에서 활을 쏘는 날쌘 기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윤관 장군은 패배에 좌절하지 않고, 실패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여 왕에게 새로운 군대 창설을 건의합니다. 그것이 바로 '별무반'입니다. 여진족의 기병을 상대하기 위해 고려 역시 말을 타는 '신기군(기병)'을 주축으로 삼고, 보병인 '신보군', 심지어 스님들로 구성된 '항마군'까지 포함한 특수 부대를 만든 것입니다.

적의 장점을 벤치마킹하여 철저히 준비한 고려는 결국 여진족을 크게 무찌르고 동북 지방에 9개의 성(동북 9성)을 쌓아 영토를 굳건히 방어해 냅니다. 위기를 겪은 후, 고집을 버리고 적의 전술을 흡수하여 시스템을 바꾼 유연한 대처가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3. 세계 최강 제국에 맞선 40년의 항쟁: 몽골의 침입

13세기,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몽골 제국이 고려를 침략해 옵니다. 몽골의 기병은 앞선 거란이나 여진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 최강의 군대였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수많은 나라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죠.

고려의 지배층(최씨 무신정권)은 몽골군의 약점이 '물'이라는 점을 이용해 수도를 바다 건너 강화도로 옮깁니다. 그리고 무려 40년에 걸친 기나긴 항쟁이 시작됩니다. 이 시기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지배층이 아니라 육지에 남아 온몸으로 몽골군에 맞서 싸운 평범한 백성들과 천민들이었습니다.

처인성 전투에서는 승려 김윤후와 지역 백성들이 몽골의 총사령관 살리타를 사살하는 기적을 만들어냈고, 충주성에서는 노비들이 앞장서서 성을 지켜냈습니다. 물론 국토가 짓밟히고 수많은 문화재(황룡사 9층 목탑 등)가 불타는 등 엄청난 피해를 보았지만, 세계를 제패한 몽골을 상대로 40년이나 버틴 나라는 고려가 유일했습니다. 결국 몽골도 고려를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고 고려의 국가 체제와 왕조를 인정하는 선에서 타협을 맺게 됩니다.

📌 핵심 요약

  • 거란의 침입과 서희의 외교전: 무조건적인 항복이나 전쟁 대신, 적의 진짜 의도를 파악한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피를 흘리지 않고 영토(강동 6주)를 얻어냈습니다.

  • 여진의 위협과 별무반: 기병 중심인 여진족에게 패배한 후, 기병 특수 부대인 별무반을 창설하여 적의 장점을 흡수하고 동북 9성을 개척했습니다.

  • 몽골의 침입과 40년 항쟁: 세계 최강 몽골군을 상대로 백성들과 천민들이 주축이 되어 40년간 끈질기게 버텨내며 국가의 명맥을 지켜냈습니다.

💡 다음 편 예고

외적의 침입으로 온 나라가 불타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고려인들은 정신적인 지주를 세우며 위기를 극복하려 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고려 불교문화의 꽃: 팔만대장경과 금속활자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통해 세계가 놀란 고려의 인쇄 기술과 그 안에 담긴 간절한 염원을 파헤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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